기록하고 싶은 날 39

레트로 갬성

내가 나름의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결코 버리지 않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오래된 카세트 플레이어와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뮤직 CD들이다. 웬만한 다른 물건들은 정말 버리기 아까우면 사진으로 남겨두었는데 요 녀석들은 사진으로 남긴들 듣지 못하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어서 결코 버리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버릴 수 없을 것 같은 아이들이다. 한국에서 내가 즐겨하던 취미 중 하나는 바로 점심시간에 회사 지하에 있는 에반 레코드에 가서 새로 나온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CD를 사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모아둔 CD들이 제법 많았는데 이제는 겨우 100여 개 남짓 내 곁에 남았다. 카세트테이프는 대략 30여 개 정도만 남아있는 것 같다. 내가 중학교 때 난생처음으로 정연준의 카세트테이프를..

쉽지만 어려운 일

드라마를 보면 가끔 공항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스토리가 나온다. 사랑하는 여인이 가족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떠나야 하고 그 여인이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애타게 기다리는 남자는 나타나 주지 않고 결국 출국장으로 들어가면서 계속 뒤돌아 보다가 마지막엔 숨 가쁘게 달려와 서로 포옹을 하며 나중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눈물바다가 되어 결국 헤어지는....... 요런 장면. 그라마이기에 가능한 그런 장면들. 그런 사연과는 사뭇 다르지만 나에게도 잊지못할 공항에서의 추억이 하나 있다. 오랜 고민끝에 내린 결정이었기에 나는 결국 인천공항에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며 탑승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랜 친구 녀석이 양복을 빼입고(?) 내 앞에 나타났다. 나에게는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조금 당황스러운 ..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2)

드디어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의 원본 'Something to Some' by Javan (Published in 1984). 가끔 너무 갖고 싶은데 시중에 새것으로 구할 수 없어서 used로 책이나 음반을 구입하곤 하는데 그런 것을 받아볼 때는 새것을 받아보는 것보다 좀 더 벅찬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정현종 시인이 방문객 이라는 시에서 표현한 것처럼 마치 한 사람의 일생이 나에게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만 같은 그런 벅찬 감정이 밀려올 때가 종종 있다. 이 책은 분명 누군가 1984년에 구입을 했을것이고 구입한 이는 한 장 한 장 이 책을 읽어가면서 많은 것들을 깨닫고 또 누군가에 좋은 구절을 적어서 편지를 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unknown history가..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침부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더니 이제는 완연한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한 기운이 집을 나서는 나에게 슬쩍 다가왔다. 올초에 받은 검사 중에 추가 검사가 필요해서 스케줄을 잡아뒀다가 코로나로 인해 몇 번을 미루고 또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오늘 드디어 큰 맘(?)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입구에서부터 이전과는 달라진 풍경이 더욱더 마음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겁이 나서 계단으로 4층까지 올라갔는데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안 했는지 숨이 턱까지 차서 숨쉬기 조차 힘이 든다. 다른 걸 떠나서 운동을 좀 하라고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ㅋ 대기실에서 내 이름이 불리워지길 기다리고 있는 이 지루한 시간을 결코 지루하게 보내지 않을 수 있는 나..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물건을 주문해서 배송을 받으려면 많은 난관에 부딪혀야만 했다. 한국 휴대폰 번호가 없으면 회원가입 조차도 안되거나 또 어찌어찌 가입은 했어도 국내 배송밖에 안되거나 해외 카드로 결제할 수 없어 포기한 경험이 많다. 물론 지금도 그런 싸이트가 대부분이지만언제부터인가 많은것들이 가능해졌다. 그냥 안되는가부다 하고 포기한 세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그중 나에게 가장 신나는 일은 한국 알라딘에서 미국까지 배송도 해외 카드 결제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주문하고 5일이면 DHL로 물건이 집앞에 뙇 하고 되착된다.^^ 오늘은 내가 나에게 보낸 선물이 도착했다. 읽고 싶었던 허지웅 씨의 책과 연습해 보고 싶었던 손글씨 책들 그리고 새로나온 펭수 엽서 셑트 ㅋㅋ 허지웅씨의..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1)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물건들이 내 주변에는 늘 존재한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꾸역꾸역 미국까지 끌고 온 물건들 중에 하나인걸 보면 내가 꽤 많이 애정 하던 물건임이 분명하다. 단지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을 뿐.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중 하나는 흩어져 있던 나의 소중했던 추억들을 조각조각 다시 모아보고 싶어서였다. 기억이 더 잊혀지기 전에, 너무 아파서 잊어버리려고 발버둥 쳤던 순간들 조차도 이제는 감사함으로 승화할 수 있는 삶의 굳은살이 생겨서라고 감히 말해 본다. 오랜 책들을 다시 꺼내보다 보면 책 앞에 적힌 선물한 이 아니면 내가 나에게 적었던 메시지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따라온다. 16살이 되던 해, 생일을 맞아 시집을 선물해주는 친구가 있었던 나는 정말 행복한 소녀였음이 분명하다. 지금도 ..

시작하면 보이는 것들

이번 한주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후다닥 지나갔다. 그리고 많은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알게 되는 기쁨을 맛보며 주말을 향해 달리고 있다. 블로그를 시작했고 블로그를 나만의 공간으로 꾸며가기 위해 소품들이 필요했던 차에 인스타그램에서 영감을 받아 무심코 노트를 꺼냈고, 오래전에 사두었던 MICRON펜을 슬쩍 꺼내봤고, 그냥 글씨를 써보았고, 생각난 김에 적어뒀던 자작시들을 손글씨로 써보았고, 그걸 사진을 찍어봤고, 그 사진을 블로그에 올려봤더니 소통이라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편리함과 신속함이라는 이름아래 컴퓨터로만 글자를 적어보다가 갑자기 손글씨들을 많이 적어보니까 기분이 좀 묘했다. 생각보다 글씨가 잘 써지지 않았고, 펜으로 눌려지는 가운데 손가락이 금방 아파왔다. 그런데 신기한건 펜을 ..

내 손안의 능력

나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교내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놓쳐 본 적이 없고, 중학교 때는 학교 대표로 지역 사생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아 올 정도였으니 나름 소질이 꽤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때 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늘 학급 서기였다. 글씨를 멋지게 쓰지는 못했지만 또래 중에 깔끔하고 또박또박 썼던 기억이 난다. 학창 시절에는 좋아하는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려서 선물을 하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편지를 쓸 때는 자체 제작 편지지와 봉투를 만들어서 했고, 하드보드지로 필통을 만들어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붙여서 멋지게 만들어 가면 친구들이 항상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내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림을 그릴 때나 무언가를 만들 때..

시작, 감사의 조건 더듬어 찾아보기

생각해 보니 꽤 오래전부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들로 막연히 상상만 하고 있을 뿐, 막상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시작된 많은 일상의 변화들과 갑자기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들을 마주하게 되자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둘 실천해가고 있는 요즘이다. 그중 하나가,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 목사님들의 책 출간을 위한 교정과 편집을 도와드리는 일이었다. 나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앞에 주어진 섬김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수십 년 목회의 경험을 통해 탄생한 그분들의 작품을 독자로서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신앙서적의 교정과 편집과정을 도우면서 감사하게도 그동안 몇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