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싶은 날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1)

캘리 E. 2020. 9. 22. 13:35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물건들이 내 주변에는 늘 존재한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꾸역꾸역 미국까지 끌고 온 물건들 중에 하나인걸 보면 내가 꽤 많이 애정 하던 물건임이 분명하다. 단지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을 뿐.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중 하나는 흩어져 있던 나의 소중했던 추억들을 조각조각 다시 모아보고 싶어서였다.

기억이 더 잊혀지기 전에, 너무 아파서 잊어버리려고 발버둥 쳤던 순간들 조차도 이제는 감사함으로 승화할 수 있는 삶의 굳은살이 생겨서라고 감히 말해 본다. 

오랜 책들을 다시 꺼내보다 보면 책 앞에 적힌 선물한 이 아니면 내가 나에게 적었던 메시지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따라온다.

16살이 되던 해, 생일을 맞아 시집을 선물해주는 친구가 있었던 나는 정말 행복한 소녀였음이 분명하다.

지금도 이 친구는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곁에 있어줄 그런 소중한 인생보물이다.

도대체 연우오빠는 누구였으며 나는 왜 그리 슬퍼했던가! 16살 꽃다운 나이에 벌써 사랑앓이를 했다니 ㅋㅋㅋ

기억을 되짚어 보니 나는 친구가 선물해준 이 책을 참 사랑하고 좋아했다. 시집이 2,500원이었다니... 16살 동갑내기 친구가 자기 용돈을 쪼개서 시집을 선물해준 그 마음이 참 고맙다. 생각해 보니 이 친구는 그동안 나에게 책 선물을 퍽 많이 해주었다. 비싼 국제 우편료를 마다하지 않고 종종 이런 따뜻한 메시지와 함께 좋은 책들을 마음 담아 보내주었다. 그 사실조차 잠시 잊고 있었다니 조금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랬다. 

16살 소녀였던 나는 시인이 말했듯, 삶이라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님을 진작 알아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루지 못한 꿈들, 외로운 밤들, 누구를 만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막막함 가운데

결국 내가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아니 당장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알지 못하면서 마치 평생을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문득 이 시집이 번역본인 것이 보여서 원서를 찾아봤더니 현재는 절판이 되어 ebay로 바로 주문 버튼을 눌렀다.

원문에는 작가의 감정들이 어떻게 전달이 되어 있는지 또 내 마음에는 어떤 모양으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16살 생일에 이 고마운 책을 선물 해준 친구에게 당장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내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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