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싶은 날

정리의 비밀

캘리 E. 2024. 1. 21. 15:00

 
나는 마음이 복잡해지거나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는 정리를 한다.
청소도 좋고 빨래도 좋다. 
가수 이적의 '빨래'라는 노래에는"빨래를 해야겠어요.......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요 그러면 나을까 싶어요 잠시라도 모두 잊을 수 있을지 몰라요"라는 가사가 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마치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만 같아 마지막 음이 끝날 때까지 숨죽이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가 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비슷한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름 많이 있겠구나 싶으니 왠지 든든한 기분까지 든다.
 
얼마 전 지인을 통해서 밀리의 서재라는 온라인 독서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평소 독서를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또 한국에서 책 주문을 종종 하는 나로서는 신세계를 만난 셈이다.
생각보다 신간도서도 많고 오디오 북까지 있으니 종이책이 주는 향긋한 종이질감의 기쁨을 살짝만 내려놓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플랫폼인 셈이다. 이달까지는 무료체험을 누릴 수 있고, 다음 달부터는 매달 $9.99를 지불해야 하지만 그 비용이 전혀 아깝지 않음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 앞으로 계속 이용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비싼 배송료 때문에 추리고 또 추려서 책 몇 권을 분기마다 한국에서 주문해서 읽었는데 이제는 앱 안에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을 맘껏 담아놓고 읽을 수 있으니 매우 설렌다.
 
평소 미니멀리즘까지는 아니지만 정리를 좋아하는 내게 요즘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지금까지 대략 1만명의 집정리를 컨설팅해 준 정리 컨설턴트 정희숙 대표의 책 "잘되는 집들의 비밀"이다.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라는 그녀의 말이 참으로 공감이 된다.
어제는 리스한 차에 문제가 생겨서 서비스센터에서 두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밀리의 서재 덕분에 그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 책을 여유롭게 읽을 수 있는 찬스를 얻은 셈이다. 
 
"물건 정리는 마치 마음을 정화하는 행위와도 비슷하다. 우리 주변의 물건은 우리 자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없애고, 중요한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것은 내면을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일과 같다."
- 잘되는 집들의 비밀 by 정희숙
 
나에게는 약간의 정리강박이 있다.
사용한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으면 신경이 쓰이고, 책상이 어지러우면 업무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느슨해진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주변환경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들이 항상 신경이 쓰인다. 작은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상당히 신중한 편이어서 혼자 하는 쇼핑을 즐긴다.
나에게 이런 정리강박이 생긴 이유를 잘 생각해 보면 저장강박이 있었던 엄마의 영향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계획성있게 쇼핑을 하지 못하셨다. 물론 많은 가족들을 건사해야 했으니 필요한 물건들도 많았겠지만 새로운 물건이 하나 들어오면 기존의 낡은 물건이 버려지는 패턴이 아니라 하나가 들어오면 두 개 세 개가 되는 상황이었다. 먹고 남은 일회용 플라스틱병, 두부 케이스도 버리기를 아까워하셔서 늘 집안 어딘가에 그것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면 알 수 없는 식재료가 담긴 봉지들이 꽉꽉 들어차 있어서 냉장고 문이 닫히지 않아 마침내는 테이프로 붙여놓으셨던 기억도 있다. 사람을 위한 공간이기보다는 짐들을 위한 공간에 사람들이 살짝 얹혀살았던 기분이랄까? 
보통 이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딱 두가지 성향으로 나뉜다. 과거의 환경을 답습해서 똑같이 저장강박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반대로 정리강박으로 살아가는 사람. 나의 선택은 다행히 후자인 것이다.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니까.... 
 
"정돈 되고 조화로운 공간에서 살아갈수록 우리는 심리적인 안정감과 평온함을 더 많이 느낀다. 마음속 잡음이 줄어들고 집중력과 창의력도 높아진다."
- 잘되는 집들의 비밀 by 정희숙
 
40대로 접어든 이후로 나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게 된다.
과거의 나는 그냥 과거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과거 나에게 있었던 결핍과 상처와 문제들을 잘 '정리'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테이프가 붙여있어 열어보기 조차 싫은 냉장고,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박스들로 둘러싸인 거실 선반, 발 디딜 틈 없이 무언가로 꽉꽉 들어찬 베란다가 주는 공포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아직 정돈되지 않은 삶의 잡음들을 정희숙 대표의 말처럼 잘 '정화'해가려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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