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싶은 날

새해 그리고 생일

캘리 E. 2024. 1. 21. 14:41

 

2024년, 새해가 또 찾아왔다.

새해가 되면 왠지 모를 설렘과 기대들로 그 여운이 좀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지만 그 누구보다도 한 살을 금세 얻게 되는 나로서는 새해가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그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물론 내 생일이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넘치는 축하와 사랑의 마음들이 매년 끊이지 않고 찾아오니 나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올해 내 생일에도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축하의 메시지들과 정성 어린 선물들이 도착했고 그 어느 때 보다도 나는 충만한 행복감에 빠져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많은 축하와 사랑을 받을 수 있음도 그저 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가슴 아픈 출생의 비화(?)가 있다.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매년 내 생일이 되면 나는 잠깐 우울해지기도 한다. 

딸만 줄줄이 여섯명의 가난한 가정에 마지막 일곱 번째 '또 딸'로 태어난 나를 사람들이 반겼을 리가 없다.

외할머니는 또 딸이라는 소식에 털썩 주저앉아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셨다 하고, 당시 중학생이었던 큰언니의 일기장에는 그 당시 맏딸로서 죽고만 싶은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며(언니의 그 일기장을 스무 살 중반쯤 직접 보게 되었다)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셨다고 하니 내 인생의 시작은 우리 가족의 최대 비극의 한 장면이었던 거다. ㅠ.ㅠ

 

얼마 전 노희경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다가 그녀도 나와 비슷한 출생비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만큼 핵공감하면서 그 내용을 읽은 사람이 또 있을까?

드라마 작가로 대단한 명성을 얻은 그녀는 경남 함양 산골에서 가난한 집안의 칠 형제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녀의 할머니는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강보에 싸인 채 윗목에 올려두었다고 한다. 군불이 닿지 않는 윗목에 사나흘 있으면 스스로 목숨줄이 떨어져 나가 집안의 고단을 덜어줄 거라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너무나 감정이입이 되어서일까? 그런데 그 당시 그녀의 큰언니가 할머니 몰래 생쌀을 씹어 입에 넣어주어서 그녀가 살게 되었고 결국 지금의 그 유명한 노희경 작가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충격의 반전 스토리가 그 뒤 이야기로 덧붙여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를 윗목에 방치한 건 할머니가 아니라 바로 그녀의 엄마였다는 거다. 당시 그녀의 엄마는 자식을 원하지 않았고 더구나 딸은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결국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평생 예뻐라 하며 잘 키우셨고 그녀의 마음도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작가에겐 아픈 기억이 많을수록 좋단 생각이다. 아니, 작가가 아니더라도 그 누구에게나 아픈 기억은 필요하다. 내가 아파야 남의 아픔을 알 수 있고, 패배해야 패배자의 마음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 노희경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중에서...

 

노희경 작가는 알까?

그녀의 글로 인해서 또 한 명의 출생의 아픈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흔 중반에 접어선 사람이 철없이 그게 뭐 그렇게 대수라고 아직도 마음에 품고 곱씹는가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 가슴 아픈 상처는 시간이 아주 오래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는다고....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말이다. 

 

어쨌든 2024년은 시작되었고 매년 나를 우울감에 살짝 담궜다가 꺼내주는 내 생일도 지났다.

많은 축하와 축복 속에 행복한 생일은 지나갔고 오늘 나는 어제와 동일한 나로 또 하루를 지낸다.

노희경 작가의 말처럼, 아픈 기억이 있는 나 이기에 누군가가 아파하면 제일 먼저 위로하고픈 본능이 장착된 나 이고, 아픈이들의 마음을 잘 보듬어주고 싶어 하는 나 이다.

그렇다. 그녀의 말처럼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해 못 할게 뭐 그리 많겠는가?

아픔조차 기쁨으로 승화해 보겠다고 차마 말하진 못하지만 이제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상처로 부터 덤덤해 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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