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싶은 날

대화하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

캘리 E. 2021. 5. 29. 13:54

Photo by Kelly E.

나는 대화하는 TV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릴 적부터 가족들에게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꾸어 말하면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많은 자매들 속에 막내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언니들은 언니들 대로 바빠서 나는 언니들이 상대해 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집 밖에서 부엌쪽 창문을 열고 손을 한참을 뻗어보면 그곳에 열쇠가 걸려있었다. 

그 열쇄를 꺼내서 현관을 열고 비로소 나는 텅 빈 집안을 혼자 들어가야 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러다 어떤날은 열쇠를 꺼내다가 팔이 짧아 실수로 열쇠를 놓친 적도 있었다. 그날은 무작정 집 밖에서 다른 가족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런 날은 나도 모를 설움과 속상함이 복받쳐 왔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왜 열쇠를 놓쳤냐며 언니들에게 혼날 것이 걱정이 되어 혼자서 속앓이를 하기도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혼 날일도 또 혼날까 봐 걱정할 일도 아니었는데 내 어린 시절은 다소 두려움의 원인들이 가까운 주변에 편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많은 가족들과 살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족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다행히 주변에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좋은 동료들이 있었고 신앙의 친구들이 있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대화하는 예능을 좋아하고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의 시간을 사랑한다.

 

오늘은 내가 애청하는 방송 대화의 희열에 오은영 박사가 출연했다. 

'육아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타이틀을 넘어 그녀는 전 세대에게 사랑을 받는 정신과 전문의가 아닐까 싶다. 

오늘 방송을 통해 느낀 점은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패널들도 모두 그녀와 대화하고 싶어 하고 그녀에게 자신의 고민들을 털어놓고 해결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단어 하나하나까지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의 입술과 표정에 집중하는 패널들을 보고 있자니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나도 저 오은영 박사처럼 누구나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둘째는, 우리가 생각할 때 완벽하고 훌륭해 보이는 사람들도 각자 삶의 고민과 그늘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부와 명예가 쌓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것이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과 또 그 사실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슬플 때 함께 슬퍼해 줄 수 있고, 내가 기쁠 때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 줄 수 있는 진정한 인생의 보물들 말이다. 그들이 가족일 수도 있고 친한 친구일 수도 있겠지만 항상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늘 잊지 않고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어릴적 나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족이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누군가가 털어놓는 속마음을 따뜻하게 받아주고 감싸줄 수 있는 마음의 쿠션을 장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과거의 내가 그랬으니 지금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가 아니라 오은영 박사처럼 누구나 만나고 싶어 하고 대화하고 싶어 지는, 누군가에게 삶의 희망의 문을 열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